다시 임신을 시도할 때 가장 필요한 것

유산이나 사산을 겪거나 불임 진단을 받은 이들이 다시 임신을 시도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위안이나 무조건 할 수 있다는 격려에 지친 당신을 위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조립식 주택의 창가에 앉은 서른일곱의 로라 버킹엄(Laura Buckingham)이 자신의 첫 유산 경험을 말했다. 버킹엄은 지금까지 11번의 유산을 겪었다. 너무 무서웠어요. 동갑내기 벡스 건(Bex Gunn)도 당혹스럽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12주 차에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의사가 아기의 심장박동이 안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2주 차에는 태아의 크기가 어때야 하는지도 몰라서 정말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어요. 이미 출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산은 생각지도 못했죠. 이스트 서식스(East Sussex)에 있는 본인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건이 말했다.

자신들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버킹엄과 건은 더 워스트 걸 갱 에버(The Worst Girl Gang Ever)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2020년 7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충격과 슬픔에 빠졌던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팟캐스트는 수많은 여성에게 조언과 위로를 주고 있다. 8월에는 유산의 아픔을 겪은 여성들에게 실질적이고 정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팟캐스트와 동일한 제목의 핸드북을 출간했다. 여성들에게 더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임신 전 단계부터 해야 할 것이 있어요. 유산이 평범한 대화 주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해요. 수많은 임신부가 <임신한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What to Expect When Youre Expecting)>을 읽듯이 유산도 당연한 이야깃거리가 되어야 해요. 건이 말했다.

버킹엄과 건은 유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많은 여성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보그>는 BBC 뉴스의 세계 보건 기자 튤립 마줌다르(Tulip Mazumdar)와 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습관성 유산을 겪은 후 <유산: 해답을 위한 여정(Miscarriage: The Search for Answers)>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4월 말에 방영했다). 유산에 대해 무지하던 그녀는 유산한 상태로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있는 모리아 난민 캠프에 갔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조기 유산은 그냥 생리를 오래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합병증이 있었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2018년 <보그>에 자신의 경험을 기사화한 후 피파 보스퍼(Pippa Vosper)는 지난 8월 <고통을 넘어: 임신과 유산이라는 여정을 헤쳐가다(Beyond Grief: Navigating the Journey of Pregnancy and Baby Loss)>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린드라 메딘 코헨(Leandra Medine Cohen)부터 엘리자베스 데이(Elizabeth Day)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의 유산 경험을 다룬다. 보스퍼는 2017년 임신 5개월 차에 아들 악셀(Axel)을 유산했다. 그녀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집필을 시작했다. 임신 4주 만에 유산한 일, 임신 테스트를 해본 일, 8개월 만에 조산한 일 등 사람들은 다양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눌 곳이 마땅치 않아요. 보스퍼가 말했다. 또 심리 치료사 안나 호겔랜드(Anna Hogeland)는 지난 6월에 출간한 <더 롱 앤서(The Long Answer)>라는 그녀의 데뷔 소설에서 여성이 임신, 낙태, 유산, 불임 등 다양한 경험을 나누며 어떻게 함께 뭉치고 또 멀어지는지 탐구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한때 금기시해온 주제가 이제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만큼 답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함도 강하다. 임신부 네 명 중 한 명이 유산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영국에서 유산은 어떤 공식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산이 얼마나 흔한 일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유산이 왜 일어나는지도 잘 모르기 일쑤다. 우리가 심해 밑바닥보다 달 표면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자궁의 특성보다 광합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산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연구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임신에 관한 연구에 투자금이 적기 때문에 임상의들은 생의학자가 되어 임신이라는 여성의 근본 생리를 연구할 동기가 적다. 그럼에도 잔 브로센스(Jan Brosens)와 같은 연구자는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 도전한다. 사실 유산에 대한 정의도 제각각이지만 유산을 여러 번 하는 경우, 혈액 검사부터 혈액 응고, 호르몬 불균형, 항체, 자가 면역 질환, 비타민 결핍 등 별의별 것을 다 검사하죠. 브로센스 교수는 자신이 산부인과 교수로 있는 워릭대학교 사무실에서 말했다. 임신부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을 찾으면 약을 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죠. 수년, 아니 수십 년간 그렇게 해왔어요. 하지만 이런 테스트를 한다고 유산의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어떤 데이터도 없어요. 모든 임상 시험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알약 한 알 처방해준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죠.

브로센스 교수는 병리학적 측면에서 유산의 원인을 찾는 대신 착상 체크 포인트 이론을 내놓았다. 자궁 내막을 보면 착상 성공률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궁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편견이 존재하죠. 제 동료들도 자궁 내막 세포란 그저 에스트로겐이 분비되면 자라나고, 프로게스테론이 나오면 임신을 준비하는 멍청한 세포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과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죠. 유산에 대한 연구 현황을 보면 여성 생식에 대해 남성 중심적 시각이 아주 팽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유산의 심리적인 영향 또한 간과했는데 이 또한 위험하다. 2019년 톰 본(Tom Bourne) 교수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런던의 병원 세 곳에 있는 환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조기 유산을 겪은 환자 중 29%가 유산 1개월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경험했으며, 18%가 9개월 후 같은 증상을 겪었다. 17%는 불안을 호소했으며, 6%는 중증도 혹은 중증의 우울증을 보였다. 수천 명이나 되는 이들이 유산을 하고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난 뒤에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산 관련 자선단체 토미스(Tommys)는 누구든 유산을 겪을 때마다 정신 건강 검진과 합당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유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참담한 수준이죠. 브로센스 교수가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유산을 경험한 당사자나 파트너가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요.

보스퍼는 유산의 트라우마와 충격이 너무 커서 때론 목숨을 끊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꼭 붙잡고 싶었어요. 양손이 너무나 허전했죠. 보스퍼는 자신의 유산 경험에 대해 글을 쓰면서 왜 부모들이 유산과 잃어버린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거였어요. 다른 사람들은 내 배 속의 아기를 직접 느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아기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얘기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거죠. 마줌다르도 동의했다. 의사들은 너무 바쁘기 때문에 유산을 겪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쉽지 않죠. 이런 인간적인 부분을 부수적 요소로 여기기도 하고요. 유산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큰 충격을 주는데 제대로 케어를 받지 못하면 상황이 100배는 더 악화될 수 있죠.

본인의 BBC 다큐멘터리를 위한 조사를 하던 중 마줌다르는 유산한 아이를 간이 변기에서 처음 마주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만 해도 임신 말기에 유산한 아들 리바(Rivah)를 작은 관 모양 상자에서 처음 마주했다. 물론 자원은 부족하고 직원들은 과로하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시간과 관심을 쏟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버킹엄은 누구나 친절을 베풀고 상대를 배려하며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잃은 여성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환자가 아이에 대해 말을 꺼내면 의료 전문가들은 그 이야기를 따라가주는 거죠. 초음파 검사 전문가와 팟캐스트를 진행한 적 있었는데 초음파 검사를 할 때 환자에게 어떻게 말을 걸지,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교육은 따로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매년 약 2,000쌍의 부모가 유산 때문에 버밍엄 여성 병원(Birmingham Womens Hospital)을 찾는데, 올해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영아 상실 부모 지원 센터 설립을 위해 약 300만 파운드를 모금했다. 우들랜드 하우스(Woodland House)는 유산을 겪은 이들을 위해 상담실, 가족실, 개인 정원을 제공한다. 이 시설을 보면 유산으로 슬퍼하는 부모들이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임신 24주 전에 유산을 겪은 사람들은 따로 유급휴가를 받을 수 없다. 2021년 뉴질랜드에선 유급 유산 및 사산 휴가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영국에선 아직도 고용주에게 특별 휴가를 부탁하거나 병가, 심지어 본인의 연차를 써야 할 때도 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안젤라 크롤리(Angela Crawley) 의원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임신 24주 전 유산한 산모에게 최소 3일의 유급 휴가를 제공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유산을 겪은 이들을 더 배려하고, 좀 더 온정적인 정책을 펴는 회사도 있을 거예요. 의회에 있던 그녀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하지만 우리 경제를 구성하는 건대부분 중소기업인데 그런 작은 사업체나 기관은 정부가 이끌어줘야 해요. 지난해에 부모가 된 크롤리 의원은 정치권에서 유산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해 논의하길 원했다고 했다. 인간적으로 한 명의 여성이자 부모로서 이 주제가 좀 더 중요하게 다뤄지길 바랐어요. 너무도 많은 사람이 유산을 경험하는데 아직도 유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죠. 그래서 이런 법령을 발의한 거예요.

유산과 관련해서 자주 거론되는 주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인종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흑인이나 동양인은 출산 중 아이를 잃거나 사산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알려진다. 지난해에 발간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보다 유산할 확률이 43% 높다. 이전에는 유산을 겪은 사람들이 의료 시스템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지, 소통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것보다는 생물학적 또는 의료적 원인을 조명하곤 했다. 하지만 영국의 자선단체 버스라이츠(Birthrights)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문제는 구조적 인종차별이지 망가진 몸이 아니라고 말한다.

질 분비물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자궁 경부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죠. 산부인과 전문의 카렌 조아시(Karen Joash) 박사가 설명했다. 유색인종인 사람들은 시스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더 좋지 않은 대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쉽사리 주장하지 못하죠. 카렌 박사는 유색인종의 경우 양육권을 잃을 확률이 높을뿐더러 원하는 심리 치료사와 연결될 확률 또한 낮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의료 서비스를 찾거나 유산 후 정신적인 도움을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임신 중기 이후에 유산할 경우 분명한 이상 징후가 있기 마련이죠. 위험 요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관련 증상이 나타났을 때 간과하면 안 돼요. 임신 전이나 임신 중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질 압박감, 묽은 분비물 증가, 출혈 등 유산 징후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물론 유산을 겪는 모두에게 맞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말투가 다르고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길 원하는 시점도, 터놓고 얘기하고 싶은 정도도, 안고 가는 기억도 다르기 마련이다. 의료인을 포함해 당사자가 아니라면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생식 건강(Reproductive Health)에 마땅한 존중을 해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유산의 파급 효과는 무시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그저 얘기하길 꺼릴 뿐이죠. 버킹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그 엄청난 아픔을 겪고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들도 있죠. 다른 이가 유산을 겪고 본인을 챙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질 때까지 도와주고 사랑을베풀어주는 거예요.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