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서거 77년 만에 대한민국 국적 얻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인 윤동주 시인의 ‘서시’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무장투쟁에 직접 나서진 않았지만, 저항시로 자신의 뜻을 나타냈죠. 일본 유학으로 인해 민족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짧은 생을 살다 간 윤동주 시인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소망하며 작품을 남겼습니다. 일제의 강압 아래 많은 이가 절필을 하거나 변절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만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 지금도 그는 가장 아름다운 시인이자 청년으로 많은 이의 가슴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윤동주 시인은 지금까지 호적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한국인이지만, 공식적으로 한국인이 아니었던 거죠. 일제강점기 조선인에게 적용됐던 민사법 조선민사령이 제정된 1912년 이전에 국외로 이주하거나, 광복 이전에 숨진 까닭에 대한민국의 공적 서류상 호적을 한 번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는 일제의 침략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처단한 장인환 의사, 봉오동전투 승리의 주역 홍범도 장군, 광복군총영을 조직한 오동진 지사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법적으로 조선인의 국적은 1948년 12월 국적법 제정 이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공적 서류가 존재하지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