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록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 사망 27주기...사그러들지 않는 인기의 비결
1. “그와 같은 가사를 쓴 사람은 없었다”
빅토르 최는 1980년대 중반 소련 사회의 급진적 개혁의 시기였던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청년 대중문화의 가장 돋보이는 스타였다. 당시 소련 정부가 록음악을 허가함으로써 신문들은 록 콘서트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시절 빅토르 최와 그가 이끈 그룹 ‘키노’는 가장 인기있는 록밴드 중 하나였다.
키노의 노래들에는 당시 청년층의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었다. 기성 세대와는 다른, 젊은이들의 언어로 씌여진 키노의 노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와 시적 울림을 갖고 있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록음악의 또 다른 우상이었던 그룹 ‘아크바리움’의 리더 보리스 그레벤시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빅토르는 단순, 명료, 진실 그 자체다. 그와 같은 가사를 쓴 사람은 러시아에서 아무도 없었다. 그가 아직 새파란 애송이였을 때 내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제 뒤로 물러나고 자네들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그룹이 될 거야’라고. 그러자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변화’의 시대!
출처: youtube.com
그의 노래 대부분이 한 개인이 겪는 감정에 대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징이었던 히트곡 ‘변화!’도 그가 만든 노래였다. 사람들은 이 노래 속에서 소련식 생활방식의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들었다. ‘변화!’가 처음 공개된 것은 1986년이었지만 이듬해 개봉한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전설적 영화 <아싸(Асса)> 덕분에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말그대로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에서 ‘페레스트로이카의 노래’로 각인됐다.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한 빅토르 최의 노래가 자신이 소련의 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의 심장이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두 눈이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웃음소리와 우리의 눈물 속에서
그리고 혈관 박동 속에서
변화가 꿈틀거린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이 후렴구에서 정치적 마니페스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룹 키노의 멤버들은 그런 직설적 해석에 거부감을 표했다. 키노의 기타리스트 알렉세이 리빈은 빅토르가 염두에 둔 것이 ‘정치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더 깊은 변화’였다고 말했다.
3. 생애
1986년. 빅토르 최와 이고리 무힌. 사진 출처: MAMM
빅토르 최의 인기에는 그의 경력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소련 엔지니어를 부친으로 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 초 그는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보일러실에서 화부로 일했다. 이 보일러실에는 ‘캄차카’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전설적인 장소가 됐다. 자신에 대한 한 다큐 영화에서 그는 바로 이 보일러실의 화실에 석탄을 퍼넣으며 는 “나는 내가 자유롭다고 느낀다.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했다.
그가 보일러실에서 일하게 된 것은 그의 음악 활동이 당시의 공권력 구조 밖에서 행해졌기 때문이었다. 소련에서 무직자는 형법의 ‘무위도식죄(тунеядство)’로 기소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캄차카’ 보일러실은 빅토르 최의 박물관 겸 클럽이 됐다.
4. 영화 속 ‘키노’
<바늘>의 장면. 출처: Global Look Press
빅토르 최와 키노에 유명세를 안겨준 것은 영화였다. 키노의 공연 장면으로 끝이 나는 위에서 언급한 영화 <아사> 외에도 빅토르는 1988년 <바늘(Игла)>이란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영화에서 빅토르는 마약상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주인공 역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키노의 최고 인기곡인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과 ‘태양이란 이름의 별(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이 OST로 울려퍼진다.
<바늘>은 1989년 소련에서 개봉된 영화 흥행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당시 인기있던 영화잡지 ‘소련 스크린’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빅토르는 ‘올해 최고의 남자배우’로 뽑히기도 했다.
5. 빅토르 최의 우상화
러시아 젊은이들이 빅토르 최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출처: AP
빅토르 최는 1990년 8월 리가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는 그가 몰던 자동차의 중앙선 침범으로 일어났으며 과로로 인한 졸음 음전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시 그는 28세였다. 그의 비극적 죽음 이후 팬들은 그를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유명한 예술가의 거리 아르바트에 등장한 ‘빅토르 최의 벽(Стена Цоя)’은 그를 상징하는 것이 됐다. 그가 죽은지 27년이 지났지만 벽 위에는 ‘최는 살아 있다’ 또는 ‘비탸(빅토르의 애칭)는 죽지 않았다. 담배 한 대 피우러 갔을 뿐’이라는 글귀 등 그래피티와 새로운 문장들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다른 도시들에도 이런 벽이 존재한다.
빅토르 최는 여전히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중 한 명이다. 검색포털 ‘얀덱스’의 집계 결과에 따르면 ‘얀덱스 음악’ 서비스에서 빅토르 최의 노래가 플레이된 총 시간은 무려 1000년이 넘었다. 유명 영화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조만간 빅토르에 대한 영화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며 키노의 노래는 주기적으로 여러 인기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