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SF, 그로테스크’, 환영 없이 기기묘묘한 박찬경의 세계
국제갤러리에서 9년 만에 열리는 박찬경의 개인전 <안구선사>에서 회화 작업을 대거 선보인다는 소식은 그를 기획자이자 평론가, 영화(영상)감독이자 설치미술가로 알고 있던 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증폭시켰습니다. 2019년 MMCA 현대차 시리즈의 작가로 선정되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모임>을 기억해낸 분들도 많을 겁니다. 실제 박찬경은 그동안 식민, 분단, 냉전으로 점철된 한국 및 동아시아의 근현대성, 이 문제적인 시대성에 대해 다양한 매체로 발언해왔습니다. 그리고 급격한 근대화와 서구화 과정에서 소외된 존재들(전통을 포함한)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미술 언어로 풀어왔지요. 이번 회화 작품들은 박찬경이 이렇게 직조해온 작업 세계를 보다 현재적, 입체적, 그리고 개인적으로 펼쳐 보입니다. 작가는 수년 전부터 국내 곳곳의 사찰을 다니며 전승된 불교 설화나 그림, 그리고 도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고, 그래서 (이들의) 그림을 (자신의) 그림으로 재해석하는 이번 작업이 꽤 자연스럽게, 심지어 필연적으로 다가옵니다.
신기하게도 <안구선사> 전은 어떤 기술적 환영 없이도 그 자체로 기기묘묘한 세계를 구현합니다. 박찬경은 전통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 알려졌지만, 그에게 전통이란 단순히 문화유산이나 보물 등을 일컫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가까울 정도로 우리 안팎에서 끈질기게 지속되거나 지배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명쾌하게 말로 설명할 수도, 기원도 알 수 없는 그 무엇 말이죠. 과거와 현재, 옛 풍경과 현대적 일상이 두루 섞인 그의 작업은, 과연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지를, 제대로 탐구해본 적이 있는지를 되묻는 것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현대를 반성하는 계기를 찾고자 한 작가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래서 더 섬뜩(Uncanny)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풍자와 해학, 그로테스크와 유머 등 현대성으로는 도무지 길들일 수 없는 어떤 감각들이 박찬경의 선문답을 한결 흥미진진한 질문으로 만듭니다. 이런 종류의 우주적 감각들이 비단 서구의 것만이 아니었음을 넌지시 시사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죠.
박찬경이 농담 반 진담 반 일컫는 ‘선불교 SF 그로테스크’ 내지 ‘아시안 고딕’ 형식으로 표현된 각각의 세계는 가상의 옷을 입은 현실입니다. 현실처럼 읽히는 가상이라 해도 좋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깨달음을 전하던 구지선사의 설화를 작가의 ‘눈’으로 바꾼 안구선사의 이야기도, 차일피일 가르침을 미루는 스승 앞에 뜨거운 화로를 머리에 이고 선 혜통선사의 결기도 남의 얘기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통이라고 부르는 대상에 대한 태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동아시아적 시선에서의 비판, 작금의 공동체에 대한 생각, 그리고 예술의 독창성과 익명성에 대한 작가로서의 문제의식도 두루 읽어낼 수 있습니다. 박찬경은 과거의 편린에서 얻은 낯익은(혹은 그렇다고 믿는) 단서들을 낯설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계를 곰곰이 비춰보게 합니다. 실재와 상상의 간극을 증폭시키고, 동시에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하지요. 생각해보면, 진리란 손이 닿지 않는 대단히 고귀한 곳에, 깊숙한 곳에 있는 것만이 아닌 데다 무엇이든 인지하고 인식해야 바꿀 수도 있으니, 그 간극에서 길을 잃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일 겁니다.
특히 제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박찬경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들이 작가로서의 고민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상에서는 함부로 드러낼 수 없었던 특유의 솔직함이 곳곳에 스민 그림들을 보니, “그림은 고향과도 같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해됩니다. 예컨대 박찬경은 평소에 ‘정성미술’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고 하는데요. 작업 행위나 과정이 마치 기도할 때처럼 정성 혹은 치성 드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그의 말에서는 어쩐지 예술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반면 돌을 하나씩 그려서 쌓고 돌 옆에 작업 날짜를 적어둔 ‘헛수고’는, 이렇듯 미술을 향한 순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어쩌면 갈등일지도 모르는 마음을 꼭꼭 눌러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헛수고나 다름없는 ‘돌탑 쌓기’를 하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위안을 얻듯이, 작가는 하루하루 돌을 올리듯 그림을 그리는 비효율과 무용함의 상태에서 더욱 가치 있는 무언가가 생겨난다고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어쩌면 예술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박찬경 특유의 통찰력이 심지처럼 자리한 자조적인 유머와 해학은 나를 웃게 합니다. 덕분에 저는 그의 다음 전시 혹은 작품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P.S. 이번 전시와 연계해, 작가의 영상 작품 ‘늦게 온 보살'(2019)과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픽'(2016) 상영회가 4월 8일과 5월 9일, 국제갤러리에서 예정되어 있습니다. 박찬경의 과거와 현재를 한걸음에 가로지를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