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뷰캐넌 “모든 위스키는 저마다의 선율을 연주해야 한다고 믿어요”
브라운포맨의 글로벌 앰배서더 스튜어트 뷰캐넌(Stewart Buchanan)이 들려주는, 걸어서 캐스크 속으로.
앰배서더도 비행 중 위스키를 마십니까?
비행 중엔 최대한 잠을 잡니다.(미소)
아쉽네요. 저는 비행 중에 홀짝이는 위스키가 꽤 달콤하거든요.
위스키의 매력이 바로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가 중요하죠. 편안하게 기대 앉아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비행기 안이든, 바에서든, 집에서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가장 좋은 장소죠.
‘스틸맨’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글로벌 앰배서더가 된 점이 흥미로워요.
스물세 살 때 스틸맨, 증류기 앞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벌써 33년 전이네요. 위스키 업계는 굉장히 작은 세계예요. 비슷한 생각과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밀도 높은 공동체죠. 그 안에서 놀라운 기회들을 얻었고, 처음 10년은 오롯이 위스키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동시에 증류소의 유지, 보수 업무도 맡았죠. 2004년에 벤리악으로 옮겼는데, 첫 임무가 거의 모든 기계를 분해하는 일이었어요. 하나하나 뜯어내고 다시 조립해서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작업이었죠. 제 위스키 인생의 상당한 시간은 엔지니어링에 쓰였어요. 보일러, 펌프, 밸브 같은 설비들. 단순히 술을 만드는 게 아닌
기계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일이었고, 저는 그 과정이 정말 좋았어요. 지금도 종종 그 시절이 그리워요.
‘스틸맨’으로서 위스키를 새롭게 발견한 숙명같은 순간이 있었나요?
증류소 현장에서 창고 관리 쪽으로 차차 역할이 확장되었고, 그 경험은 제 시야를 완전히 바꿨어요. 위스키 숙성 스타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캐스크를 옮기며 위스키가 어떻게 성장하고 풍미가 달라지는지를 직접 보게 됐거든요. 위스키를 ‘다룬다’는 감각이랄까요. 그게 정말 충격적일 만큼 인상 깊었어요.
그 어떤 캐스크도 같지 않고요. 마치 사람처럼.
맞아요. 똑같은 캐스크는 단 하나도 없어요. 어떤 캐스크는 유독 눈에 띄고, 그렇게 선택된 캐스크를 20년 동안 돌보며 마침내 병입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건 몹시 특별한 경험이죠.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고요. 오랜 시간 정성껏 키운 아이가 둥지를
떠나는 걸 지켜보는 기분과 비슷해요.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을 전할 수 있다는 건 앰배서더로서 큰 특권이에요.
오늘 시음회가 캐스크의 본질을 탐구하는 드문 경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캐스크를 정성껏 돌보다 보면 놀라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단지 우연으로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완전히 설계할 수도 없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캐스크가 나아갈 길을 위스키의 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선택된 캐스크들이 바로 더 글렌드로낙 캐스크 오브 캐릭터 프로그램이나 벤리악 싱글 캐스크 에디션으로 이어집니다.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캐스크이기도 하죠. 위스키가 마침내 완벽한 순간에 도달했다고 느껴지는, ‘지금이다’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은 정말 마법 같아요. 요즘 위스키 시장을 보면, 점점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요.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위스키들 말이에요. 그 시절의 위스키가 무한정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그 10년대를 대표하는 마지막 캐스크를 병입하는 순간일 수도 있어요. 한 번 릴리즈되면 그 캐스크는 영원히 사라지고, 다시는 같은 시간을 반복할 수 없죠. 그래서 싱글 캐스크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은 더욱 특별하죠. 그 시대의 마지막일 수도, 그 캐스크의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세상에 나온 위스키 중 가장 희귀한 걸 꼽자면요?
글렌글라사 증류소의 서펜타인 컬렉션 Serpentine Collection은 현존하는 위스키 중 가장 희귀한 축에 속해요. 극도로 오래되고 매우 드문 원액들로 구성한 위스키죠.
더 글렌드로낙, 글렌글라사, 벤리악 세 증류소의 위스키 전달자죠. 이 개성 강한 세 증류소 위스키를 음악에 비유한다면 어떨까요?
모든 위스키는 저마다의 선율을 연주해야 한다고 믿어요. 더 글렌드로낙은 묵직하고 강건한 하이랜드 원액에 스페인 셰리 캐스크가 더해지면서 음악으로 치면 베이스 노트 쪽으로 내려가요. 저음이 깊고, 뒤를 단단히 받쳐주면서도 중심부에는 아름다운 캐릭터가 자리하죠. 전반적으로 더 깊고 어두운 음역, 풍부한 베이스 노트가 특징이에요. 반면 벤리악은 스페이사이드 특유의 성격답게 훨씬 하이 노트를 향해 나아가요. 마치 1920년대 올드 재즈 같달까요. 리듬감 있고, 움직임이 살아있으며, 무엇보다 즐겁죠. 글렌글라사는 거의 역사적인 교향곡을 되돌아보는 느낌이죠. 오래된 작곡가들의 작품처럼요. 글렌글라사 위스키는 극도로 희귀한 빈티지 컬렉션이기 때문이에요. 수량도 많지 않죠. 그래서 오래된 도서관의 희귀본 서가에 비유하고 싶어요. 오래된 책, 낡은 나무 선반, 왁스로 닦아낸 오크 향, 그 모든 것이 글렌글라사의 진짜 에센스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캐스크로 ‘벤리악 1976’을 언급해왔죠.
여전해요. 처음 창고에 들어가 캐스크를 마주한 순간은 지금도 ‘전구가 켜지는 순간’으로 남아 있어요. 더 글렌드로낙 1972 빈티지나 1993 빈티지에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1976년은 유독 특별했어요. 아주 더운 여름이었고, 저는 다섯 살이었죠. 밖에서 뛰어놀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해요. 지금도 위스키를 마실 때 저는 여전히 다섯 살이던 그해의 저와 연결돼요. 그런 순간들이 감정적인 연결을 빚어 더 깊이 공명하게 해요.
훌륭한 위스키는 마치 타임머신 같겠네요.
정확해요. 싱글 몰트를 즐기는 애호가는 어느 순간부터 ‘탐험가’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 카테고리에 깊이 빠져들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어지거든요. 매일 같은 것만 반복한다면 분명 지루하겠죠. 우리가 위스키를 선택할 때마다 늘 염두에 두는 건 하나예요.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결국 목표는 분명해요. 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미각을 전혀 다른 스타일로 열어주는 거죠.
위스키 업계 전설의 디스틸러 빌리 워커, 레이첼 배리와 모두 일했어요. 둘에게서 무엇을 배웠나요?
제 첫 증류소 시절부터 빌리 워커와 오랜 시간 함께 일했어요. 빌리는 생산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정말 모든 걸 아는 사람이었어요. 여기서 온도를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여기서 미들 컷을 살짝 조정하면 원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캐스크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를 미리 그려보는 통찰력까지. 위스키와 캐스크가 어떻게 만나 반응하는지를 ‘미리 보는 눈’, 그 비전이야말로 빌리가 가르쳐준 가장 큰 자산이었어요. 반면 레이첼에게서 가장 감탄하는 지점은, 그녀의 마스터 블렌딩과 예술가적 감각이에요. 이렇게까지 스토리텔링을 하는 마스터 블렌더는 본 적이 없어요. 레이첼은 코어 레인지 위스키 하나를 만들 때도 그냥 숙성고에 들어가 이유 없이 고르지 않아요. 먼저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을 그려요. 어떤 장소일 수도 있고, 어떤 시간의 기억일 수도 있죠. 그리고 창고로 들어가 그 장면을 완성할 퍼즐 조각 같은 캐스크들을 하나씩 찾아내요. 빌리와 레이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일하는 방식도 전혀 달라요. 각자의 방식으로 대단한 인물이기에 두 사람 모두 깊이 존경해요.
시대를 거슬러 손을 맞잡은 듯한 두 장인의 합작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은 실로 영광이겠군요.
빌리 워커가 캐스크를 눕혀놓았고, 레이첼 배리가 그 캐스크들과 대화하며 선택하는 거죠. 두 사람 모두 이 결과에 분명한 역할을 했어요. 제가 세상에 나가 위스키 이야기를 할 때는 결국 단순한 지점으로 돌아와요. 이 위스키가 얼마나 독보적인지, 그 안에 담긴 숙성의 개성과 팔레트가 얼마나 독보적인지 보여주는 일이죠. 거기서부터 자연스럽게 과거로 시선이 이어져요.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유니크함, 아무리 애써도 똑같이 만들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벤리악 증류소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니, 벤리악 증류소에 애정이 상당하겠죠.
제 몸을 반으로 가른다면, 그 안에는 벤리악이 흐르고 있을 겁니다.(웃음)
벤리악 증류소의 캐스크 실험 중 흥미롭게 보고 있는 건 무엇이죠?
벤리악 숙성고에 들어서면 이토록 독창적인 캐스크 숙성을 보여주는 증류소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걸 단번에 알게 돼요. 벤리악은 다양한 방식으로 위스키를 펼쳐낼 여지가 많아요. 저는 과실 중심의 위스키를 좋아하는데, 벤리악이 지닌 프루티한 캐릭터에 다양한 캐스크 숙성이 더해지거나 벤리악 특유의 스모키한 면모가 얹히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스모키함조차도 다른 어떤 피트 위스키와는 전혀 다르거든요. 결국 핵심은 ‘실험’이에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캐스크에 다시 채워 넣은 뒤 시간이 흐르고 나서 제 팔레트에 가장 강렬하게 와닿았던 첫 순간을 떠올려보면, 마데이라와 마살라 캐스크였어요. 두 캐스크가 만들어내는 변화를 보면서 캐스크와 스타일의 완벽한 결합이라고 느꼈죠. 그래서 마데이라와 마살라는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스크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흥미로운 실험은 한창이겠죠?
그럼요. 최근에는 레이첼이 오렌지 와인 캐스크를 사용해 숙성을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메스칼 캐스크에도 도전했죠. 오크 역시 전 세계의 다양한 오크를 다루는데, 일본의 미즈나라 오크는 물론 중국, 콜롬비아, 그리스, 카르파티아 오크까지 실험 중이에요. 다만 이 결과는 오늘이나 내일 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죠. 그래서 더 매력적인,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예요. 20년 전 캐스크를 눕혀둘 때도 언제 어디서 병입될지, 언제 세상에 내놓을지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이 모든 걸 사랑해서 시작하는 것뿐이죠.
‘좋은 캐스크’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위스키를 굳이 맛보지 않고도 좋은 캐스크를 알아보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지금도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배워야 할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 요즘에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오래된 방식이기도 하죠. 창고를 오르내리며 걸을 때 가장 먼저 봐야 할 건 캐스크의 끝면이에요. 둥근 그 단면이요. 요즘은 팔렛으로 되어있는 창고나 랙 rack 시스템을 쓰는 곳이 많아 실제로 캐스크를 직접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전통적인 Dunnage 웨어하우스에서는 다릅니다. 걸어가며 모든 캐스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1979년에 채운 캐스크를 본다고 해볼게요. 끝면이 과도하게 부풀어 있지 않고, 술이 새어 나오지도 않으며, 아래쪽에 결정처럼 맺힌 흔적도 없다면 그건 그 캐스크가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의 손에 잘 관리돼 왔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태를 두고 ‘페이스가 깨끗하다(clean face)’고 표현하죠.
깨끗한 얼굴이라!
실제로 40년, 50년, 심지어 60년이 된 캐스크들 중에는 단면을 보면 마치 어제 막 채운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어요. 그건 시각적으로만 봐도 분명한 신호죠. 왜 그게 중요하냐고요? 엔젤스쉐어가 그만큼 적었다는 뜻이거든요. 과도한 팽창이 없었다는 건 증발이 비교적 적었다는 의미고, 결과적으로 도수는 더 잘 유지됩니다. 동시에 젊은 위스키보다 오히려 더 많은 과실 성분이 쌓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그 단면은 정말 중요한 힌트가 돼요.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발설해도 되는 건가요?(웃음)
(웃음) 우리가 운이 좋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다루는 모든 증류소의 원액이 기본적으로 충분히 탄탄하다는 점이에요. 캐스크가 원액을 압도해버리는 일이 거의 없죠. 오래된 위스키 중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치게 타닌이 강해지고, 건조해지거나 쓴맛이 도드라지면서 평평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의 위스키는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런 균형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레이첼 베리덕에 가능하죠.
평생 훌륭한 위스키를 곁에 둔 사람이 은퇴 후에는 무엇을 곁에 둘지도 궁금해지네요.
더 글렌드로낙 1990년대 빈티지는 정말 탁월해요. 그 시기의 더 글렌드로낙은 다른 연도 캐스크와 비교해도 유독 또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죠. 그래서 제 선택은, 페드로 히메네스 캐스크 숙성 1993년 더 글렌드로낙이 될 겁니다. 안락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맡기고 혼자 조용히 즐겨야 더 좋은 위스키죠.
오늘 시음 리스트에 1993년 더 글렌드로낙 캐스크가 준비되어 있던 걸요.
준비되셨어요? (손을 비비며) 캐스크 속으로 이제 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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