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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일출 같은 2026년의 새로운 디자이너 3

패션계는 2026 봄/여름을 앞두고 ‘대대적인 리셋(The Great Reset)’이 임박했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보그>는 색다른 각도에서 패션을 바라보며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가는 4개 브랜드를 주목했다. 그들에게 ‘패러다임 시프트’를 주도할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토리셰주, 파올로 카자나, 스티브 O 스미스, 그리고 어거스트 배런. 모두 1월 1일 일출만큼 신선하고 희망차게 빛나는 이름이다.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LVMH 프라이즈와 패션 트러스트 아라비아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더한다. 패션계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세 디자이너의 룩. (왼쪽부터) 솔기가 돋보이는 슬리브리스 톱은 토리셰주(Torishéju), 고전적인 매력의 스커트 수트는 스티브 O 스미스(Steve O Smith), 드레이핑 드레스는 파올로 카자나(Paolo Carzana).

BRAVE NEW WORLD

토리셰주 두미가 직조하는 ‘멋진 신세계’.

2026 봄/여름 시즌의 파리 패션 위크 출장 첫날, <보그> 팀에게 며칠 뒤 토리셰주 두미(Torishéju Dumi)를 인터뷰하게 됐다고 전했다. “정확히 어떤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지?”라는 질문에 2024년 10월, 토리셰주의 2025 봄/여름 컬렉션 봤을 때를 떠올렸다. 불에 그을린 듯한 머리를 한 채 콘크리트 바닥을 부술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걷던 모델들. 길이를 뚝 자른 블레이저와 구긴 천을 채워 넣은 시어 스커트와 드레스. 잠깐의 고민 끝에 내가 내놓은 답은 “세상을 향한 분노를 옷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느꼈어요”였다.

2026 봄/여름 컬렉션을 직접 마주한 감상 역시 같았다. ‘유니폼의 해체’를 주제로 한 컬렉션에는 교복 치마, 카디건, 흰 셔츠 등 익숙한 형태의 옷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룩에는 어딘가 뒤틀린 구석이 숨어 있었다. 플리츠 스커트의 허리선은 이중으로 쌓여 있었고, 카디건의 단추는 삐뚤게 잠글 수밖에 없도록 디자인했다. 의복으로서의 유니폼, 그리고 획일성을 지닌 모든 것을 향한 분노가 느껴졌다.

패션 위크 중 만난 토리셰주는 귀를 쫑긋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2026 봄/여름 컬렉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였으며, 스스로를 ‘낙관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휴대폰 녹음기를 켠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내가 그녀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익숙한 유니폼을 급진적인 방식으로 변주한 토리셰주(Torishéju) 2026 봄/여름 컬렉션. 카디건의 단추를 똑바로 잠글 수 없도록 설계했고, 원단을 이어 붙여 독특한 플리츠 효과를 완성했다.

토리셰주는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에서 남성복을 전공한 뒤 2021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녀의 디자인을 처음 눈여겨본 인물은 당시 <보그> 글로벌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가브리엘라 카레파 존슨(Gabriella Karefa Johnson)이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2023년 파리 패션 위크에 데뷔한 토리셰주는 그해 12월 영국 <보그> 커버를 장식했고, 지난 9월에는 2025 LVMH 프라이즈의 ‘사부아 페어(Savoir-Faire)’ 상을 수상하며 주목할 만한 신인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당신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토리셰주는 “화가 나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답했다. “인류는 끊임없이 세상을 화나게 합니다. 아직도 굶어 죽는 아이들이 있는 건 물론, 전쟁 중인 나라도 있으니까요. 저는 문제투성이 세태를 디자인에 반영할 뿐이에요. 문제를 못 본 체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세계를 짓는 사람(World Builder)’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토리셰주의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떨어뜨린 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구조적이지만 바스러져가는 ‘유니폼’을 입겠죠. 춤을 추며 평화를 노래하고 있을 겁니다.”

토리셰주는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에게서 영감을 받아 2026 봄/여름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뒤러의 그림 ‘기도하는 손(Praying Hands)’이 떠올라 그녀에게 종교가 있는지 물었다. 관습과 전통을 부수려는 기질이 신앙심에서 비롯한 건 아닌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톨릭으로 태어났죠. 성직자들이 입는 화려한 옷을 보며 패션과 처음 사랑에 빠졌고요. 어릴 때는 교복을 입는 가톨릭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녀는 이런 환경이 무의식적으로 디자인 철학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인정하며, 토리셰주의 모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을 걷고 싶진 않아요. 단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토리셰주는 LVMH 프라이즈의 심사위원이었던 퍼렐 윌리엄스와 피비 파일로, 스텔라 맥카트니와 아직 연락을 주고받는다. 아드리안 조페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홀로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토리셰주를 도와 생산과 유통 전반을 전담하고 있다. 모두 토리셰주라는 신세계를 단단히 받쳐주는 ‘성벽’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가 지금 토리셰주 두미의 손끝에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LINES INTO LIFE

몸 위에 핀 한 폭의 그림.

아무리 둘러봐도 패션 디자이너의 방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책장에는 패션과 무관해 보이는 책 몇 권이 꽂혀 있었고, 그의 뒤로 보이는 벽에는 기묘한 분위기의 흉상 그림이 붙어 있었다. 스티브 O 스미스(Steve O Smith)는 자신의 ‘드로잉 룸’에서 화상 인터뷰에 접속했다고 설명했다. “여기는 그림만 그리는 곳이에요. 패턴과 커팅 작업을 위한 공간은 따로 있습니다.”

2025 LVMH 프라이즈의 칼 라거펠트 상을 받은 스티브 O 스미스가 지금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라이징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디자인 방식이 무척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평면 속 그림을 삼차원의 존재인 옷으로 변환한다. 한 가지 천을 캔버스로 삼은 뒤 그 위에 색이나 성질이 다른 천을 덧대 붓질로 표현하는 식이다. “늘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즉시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죠. 본능에 의존해 최대한 ‘표현적으로’ 그리려 노력합니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완성되면 그걸 바탕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하죠.” 스미스는 이 방식에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그림을 그리는 순간 디자인 역시 자연스럽게 진화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은 무채색만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제 막 색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시작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에요. 천을 덧대는 대신 비즈를 수놓아 붓놀림을 표현한다면? 종이가 아닌 매체의 그림을 옷으로 치환한다면요? 수채화가 아닌 유화는 또 어떻고요.”

몸을 캔버스 삼아 그려낸 스티브 O 스미스(Steve O Smith)의 그림. 물감이 번진 듯한 효과를 내기 위해 올 풀림을 그대로 놔둔 검정 아플리케가 돋보인다.

스미스가 늘 캔버스 위의 그림을 현실 세계로 옮겨온 것은 아니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2017년 론칭 당시의 스티브 O 스미스는 ‘통상적인’ 패션 브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다니며 휴식기를 갖기로 한 결정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교수님께 많이 혼났죠. 제 옷이 그림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조금 웃긴 얘기지만, ‘차라리 술을 마시고 패턴을 잘라봐’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와 달리 제가 디자인을 너무 계산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은 그림과 디자인 작업이 완전히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스미스는 평소 바이마르 공화국의 회화 작품과 뉴욕 퀴어 작가들의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 현실적으로 묘사한 일상 풍경에 초현실적 요소를 결합하는 예술 장르로, 스미스의 작업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작품, 그리고 1920년대와 1950년대 의복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귀띔했다.

스티브 O 스미스의 웹사이트에선 어떤 제품도 판매하지 않는다. 그가 모든 아이템을 ‘메이드 투 오더’, 즉 맞춤 제작하기 때문이다. “처음 론칭했을 때는 홀세일 형식으로 제품을 판매했죠. 지금 고객들은 맞춤 제작으로만 스티브 O 스미스의 옷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고객과 직접 소통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무척 고전적인 방식이라고 할까요? 희소성도 빼놓을 수 없고요.” 그는 업계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자신이 만든 작은 세계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림과 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브랜드 규모를 서서히 키워나가되 스티브 O 스미스의 정체성만은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도 그가 절대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한 가지는? “스티브 O 스미스의 고객이 옷이 아닌 한 폭의 그림을 산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그거면 충분합니다.”

MAVERICK IN THE MAKING

럭셔리 패션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이단아.

2024년 2월 18일, 런던의 올드 셀프리지 호텔. 운이 좋았다. 첫 패션 위크 출장 중 일종의 ‘패션 혁명’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파올로 카자나(Paolo Carzana)의 2024 가을/겨울 컬렉션 ‘영원히 구슬픈 산(Melanchronic Mountain)’이었다. 쇼가 끝나고 난 뒤 우버를 부를 새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 한 줄 평을 적었다. “원단을 산처럼 쌓아 완성한 본 적 없는 실루엣.”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보고 있다’는 흥분감에 사로잡힌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몇 달 뒤 파올로 카자나는 2024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됐다. ‘영원히 구슬픈 산’으로 시작해 ‘모기를 끌어들이는 법(How to Attract Mosquitoes)’, ‘도축장의 날개 없는 용(Dragons Unwinged at the Butchers Block)’으로 이어진 그의 ‘희망 3부작’이 평론가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파올로 카자나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현대 럭셔리 패션계와 완벽한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 시즌 두 손으로 직접 제작한 룩 20벌 남짓을 선보인다. 폴리에스테르를 비롯해 자연에 해악을 끼치는 소재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다양한 식물을 배합해 완성한 천연염료로 옷을 염색한다. 그의 옷은 흡사 넝마처럼 색이 바랬고, 마구잡이로 구겨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파올로 카자나의 모든 것은 카자나 본인과 그가 사라반드 재단의 레지던스 디자이너로 있던 시절 만난 연인 조셉이 완성한다.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럭셔리 하우스와 정반대다.

환상 동화 속 장면을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파올로 카자나(Paolo Carzana)의 디자인. 과일, 채소, 꽃과 향신료로 염색해 완성한 독특한 색감이 그만의 시그니처다.

자그마한 컴퓨터 화면 너머로 마주한 파올로 카자나는 삼면이 옷으로 둘러싸인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파올로 카자나는 힘과 유약함의 관계를 탐구하는 브랜드입니다.” 그는 목적을 잃은 패션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패션과 인류, 자연의 연결 고리가 단절된 것 같아요. 지금 패션계는 돈이 우선입니다. 리테일 가격은 실제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이 책정되고 있고요. 단순히 누군가를 ‘멋있어 보이게’ 만드는 옷은 제 흥미를 유발하지 못합니다.” 카자나는 자신이 만든 옷을 입거나 보는 사람이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 그의 디자인을 말이나 글로 설명할 방법을 고민한 적 있다고 이야기하자, 카자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디자인은 기존 스타일이나 캐릭터, 태도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건 완전히 낯선 뭔가를 마주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에서 나고 자란 카자나는 언제나 패션을 자연과 연관 지어 생각해왔다. 그는 자연 친화적인 소재와 염료, 윤리적 제작 방식이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주장했다. “럭셔리는 자연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는 ‘지속 가능성’을 일종의 마케팅 수단처럼 활용하는 일부 브랜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2026 봄/여름 컬렉션 ‘지구상 최후의 천산갑(The Last Pangolin on Earth)’ 역시 인간이 멸종 위기로 몰아넣은 동식물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했다. “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향해 나아간다’는 마음으로 작업합니다. 이번 컬렉션은 처음으로 제 내면이 아니라 밖을 바라본 컬렉션이었죠. 쇼가 진행될수록 시간이 역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생동감 있는 컬러를 사용했습니다.”

업계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불안하게 하진 않을까? “저는 단지 새롭게 느껴지는 옷을 선보이고 싶을 뿐입니다. 서두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지금 패션계에는 창의성이 부족합니다. 창의성을 회복한, 그러니까 제대로 기능하는 패션계는 많은 문제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진심과 감정이 담긴 옷은 누구에게나 영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패션 문법 자체를 뒤엎겠다는 그의 혁명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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