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엔날레가 일으킬 변화와 실천_미술 실크로드
제16회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이다. 예술감독 호 추 니엔은 자신이 릴케의 시를 읽고 변화했듯, 이번 전시로 관람객이 영감을 받고 가능성을 확장하길 소망한다.
9월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를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 직후, 싱가포르 출신 아티스트 호 추 니엔(Ho Tzu Nyen, 1976년생)과 큐레이터들이 서로의 알록달록한 양말을 보며 웃고 있었다. 이들은 함께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Brian Kuan Wood), 최경화다. 호 추 니엔은 검은색 수트에 줄무늬 양말을 신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패션은 그에게 수행을 위한 작업복 개념이다. “비슷한 블랙 의상 다섯 벌이 있어요. 이걸 의식처럼 차려입고 작업실에 출근하죠. 이런 반복은 아주 중요합니다. 안정감이 들어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작업에 임할 수 있으니까요.” 액세서리도 거의 바뀌지 않을 듯하다. 결혼반지를 분실해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아이템으로 아내와 다시 골랐다는 프레드 실버 팔찌, 할머니가 물려준 금가락지, 그리고 ‘타이거즈 아이’라는 보석이 장식된 반지다. 호랑이는 그에게 토템 같은 동물로서 그를 소재로 한 작품도 꾸준히 선보여왔다.
호 추 니엔은 미술사, 연극, 영화, 음악, 철학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참조해 작업한다. 신화적 서사와 역사적 사실을 결합해 역사와 그 서술, 전승 방식의 다양성을 함께 이해하고자 한다. 작업의 중심 주제는 동남아시아의 복수적 문화 정체성에 대한 장기적인 탐구다. 이는 아카이브 이미지,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결합되고 종종 몰입감 높은 연극적인 설치로 구현된다. 최근 개인전은 함부르거 쿤스트할레(2025), 루마 아를(2025),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2025) 등에서 열렸으며, 2011년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싱가프로관을 대표했다.
그가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싱가포르 브랜드인데 많이 무겁고 뾰족합니다. 매일 무게를 감당하겠다는 제 일상의 실천을 상징하죠.” 실천은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이 된 그에게 당분간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란 주제를 발표하고 변화와 실천을 두 축으로 삼았다. 전시 주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Archaic Torso of Apollo)’의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왔다. 1908년 발표한 이 시에는 상상 속에 파편화된 고대 조각상이 등장하는데, 바라보는 이에게 새로운 결단과 삶의 변화를 촉구한다. 호 추 니엔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란 주제는 관람객에게 변화를 촉구하지만 어떤 변화의 길을 걸을지는 그의 몫으로 남깁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계속 메모를 하더군요.
나중에 찾아보지 않더라도 늘 뭔가를 받아 적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 행위를 통해 생각을 더 잘 이어나갈 수 있거든요.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을 제안받고 본능적으로 이끌렸다죠. 이 지역과는 2018년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과 2021년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irits Tuning)’ 광주 비엔날레 커미션으로 인연을 맺었어요.
1980년에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은 제게 의미가 굉장히 커요. 많은 시민이 저항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다양한 행위, 예를 들어 여성들이 시위대를 위해 밥을 지어주며 지지하고, 또 거리를 청소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크게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광주 비엔날레와의 작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죠. 개인적인 이유로는 이 과업으로 제가 더 확장할 거 같았어요. 내 작업에만 몰두하지 않고, 다른 아티스트와 시각예술의 여러 측면을 탐구하고 삶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특혜죠
작가의 본능과 감독으로서 전체 조율 사이에서 갈등은 없나요?
두 가지로 답하겠습니다. 첫째는 제가 예술감독, 또는 기획자, 큐레이터로서 하는 일은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에 일종의 관계성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작가로서 제 활동과도 맞닿아 있죠. 제 작품도 사상가와 아티스트의 작업과 영상을 레퍼런스로 삼거든요. 둘째, 광주의 예술감독으로서 스스로에게 되뇌는 것은 말하고 행동하고 작업하는 방식이 아티스트로서 본연의 나를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광주 비엔날레 재단이 이 시점에 아티스트인 저를 예술감독으로 초대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엔날레가 6개월 정도 남았군요. 오늘 광주로 가는데 어떤 작업이 이뤄지나요?
비엔날레에서 신작 작업을 선보일 작가들과 시간을 갖는데, 그들이 이 공간에 감각을 다지도록 돕는 것이 중요할 듯합니다. 또 광주 비엔날레 디자인을 총괄하는 디자이너와도 여러 조율을 해야 해요. 앞으로 자주 오갈 텐데 다행히 광주가 싱가포르와 그리 멀지 않아요.
주제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릴케의 1908년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왜 이 메시지인가요?
제가 이 주제를 고른 건지 이 주제가 저를 선택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2년 전 릴케의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강렬한 경험을 했어요. 당시에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직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몰두하던 릴케의 시를 돌아봤죠. 의식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외부적인 힘이 자연스럽게 작용한 듯해요. 공교롭게도 올해가 릴케 작고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뭔가가 우리에게서 비롯되기보다는 더 거대한 외부적인 힘이 우리를 통과할 때 그것을 수용하고 전파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최종적인 결정을 오로지 직관에 의존하진 않아요. 현재 우리는 녹록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죠. 뭔가 변화시켜야 한다는 큰 욕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무력감에 갇혀 있어요. 그렇기에 더욱 ‘변화’를 떠올려야 해요. 거대한 역사적인 담론 속에서만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사회적이고 우주적인 다양한 층위의 변화가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헤아려보고자 합니다.
전시의 두 가지 키워드는 ‘변화’와 ‘실천’입니다.
먼저 변화를 말해보죠. 우리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나 거울 속 내 모습처럼 매일 마주하는 작고 조용한 변화에도 주목하고자 합니다. 관람객이 지적, 신체적, 감정적 이동을 경험하며 분자적 수준에서 우주적 수준까지 변화를 연결하길 바랍니다. 둘째, 실천이 중요해요.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실험과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유지됩니다. 우리는 예술적 실천을 창조적 회복력의 모델로 삼습니다.
변화는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오늘 거울 속 자신에게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당신이 최근 변화를 느낀 때는?
전환의 소용돌이에 있습니다. 아티스트로서 저는 아시아의 역사와 깊이 맞물려 있어요. 이런 기존 관심사를 유지하지만 일상이 선사하는 경험과 아름다운 힘, 도전 과제 등에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그 전환의 시기에 릴케의 시를 조우했죠. 20년간 예술 활동을 하면서 많이 읽지 못한 시에 맹렬히 접근하고 있습니다. 종이에 쓰인 단어의 조합만으로 이토록 친밀한 경험을 선사하다니!
지난해 홍콩 M+ 미술관의 110m 파사드에 작품 ‘야간 몸짓(Night Charades)’을 선보였습니다. 1980~1990년대 홍콩 영화 황금기의 명장면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이를 준비하며 AI 분야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고요. 비엔날레를 앞두고 AI에 질문도 했다는데, 혹시 연관 프로젝트가 있나요?
AI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스며들었고, 그로 인한 문제점도 야기되고 있죠. 이런 상황에 직면하는 것만이 해결 방안입니다. 현재 AI의 이미지 생성 작업은 사진술의 도래보다 더 큰 전환점이죠. 어쩌면 영상 작업에서 AI라는 것은 불가피한 요소예요. 예술 작업에 AI 시스템을 다양하게 사용해왔고, 광주 비엔날레에도 도입됩니다. AI가 모든 작품에 관한 시를 생성하는 독특한 작업이 있을 거예요.
큐레이션에 광주 정신을 어떻게 반영하려 했나요?
광주 정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죠. 첫째는 저항 정신입니다. 앞장서서 아니요 또는 싫어요라 말하는 정신 말이에요. 둘째는 회복성으로,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와 관련됩니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피해자 어머님 모임이 있는데, 그처럼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고 나아가는 모습이 대단하고, 여기엔 예술 활동을 통한 치유도 포함됩니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하는 상당수의 아티스트가 부정적인 경험에서 살아남는 데만 그치지 않고 긍정적이고 창의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약 45명의 작가가 참여해요. 전보다 많이 줄었는데, 이유가 있나요?
1980~1990년대 세계관은 확장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압축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적은 숫자라고 관람객의 경험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도를 더 높일 수 있죠. 많은 것이 블랙홀로 귀결되듯 아주 강렬한 경험을 선사할 거예요.
수는 줄었지만 작가마다 궤적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작품을 전시하죠.
작업 결과물이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작품마다 작가가 어느 시점에 어디서 무엇으로 또는 누구로 존재했는지 담고 있어요. 아티스트와 외부 세계의 관계도 녹아들어 있고요. 한 작가가 여러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어떤 요소가 그에게 작용했고, 삶을 어떻게 형성하고 어떤 작품으로 이어졌는지 보여줄 수 있어요. 경험에 비춰보면 많은 아티스트가 집착적으로, 끈질기게 동일한 주제에 천착해요. 이런 반복적인 실천과 인내를 보여주고 싶어요.
글로벌화를 추구하던 세계에서 이젠 아시아 자체를 편안히 받아들이는 세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어요.
아시아인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편안히 느낄 수 있는 건 어쩌면 1980~1990년대의 과잉, 폭발적인 인플레이션, 글로벌화를 거쳤기 때문이죠. 물론 과거의 경험에서도 이점이 있어요. 인터넷의 도래로 우린 이어질 수 있었죠. 아시아는 더 이상 고립된 대륙이 아니고, 전 세계 동료와 함께 아이디어와 우정을 나누면서 연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고갈과 기후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과거를 넘어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야 해요. 이것이 정확히 어떤 양상을 띨지 지금 장담할 순 없지만, 어떻게 보면 이제 아시아가 본연의 모습을 편안히 여기는 세상과 분리되지 않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관람객이 광주 비엔날레에서 무엇을 얻길 바라나요?
제가 릴케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영감과도 맞닿아 있어요. 영감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통해 힘으로까지 이어지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이때 힘은 타인을 통제하거나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죠.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