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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더 아커만, 파워 드레싱의 새로운 비전?

톰 포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말하는 파워 드레싱의 새로운 비전.

자신이 디자인한 톰 포드 의상을 착용한 친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하이더 아커만. 몸에 꼭 맞게 재단된 그의 옷은 섹시하면서도 중성적이다.

지난해 어느 아름다운 저녁,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은 파리에 있는 톰 포드 디자인 스튜디오 옥상에 앉아 있었다. 1년 중 낮이 가장 길었던 그날은 결정적인 하루였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사무실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시간을 언급하자 디자이너가 아쉬움 섞인 한숨을 내쉰다. “새로운 사랑에 빠지면, 그저 그 대상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시간을 신경 쓰지 않게 되죠. 피곤하지도 않아요. 사랑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으니까요. 사랑은 심장을 뛰게 하고, 잠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콜롬비아 태생의 프랑스 디자이너는 2024년 가을 톰 포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고, 이 소식은 패션계를 들썩이게 했다. 실제로 아커만의 지난해 3월 데뷔는 그가 오늘날 가장 매혹적인 디자이너임을 시사했다. 방돔 광장 바로 옆 작은 강당, 관객은 조명이 어둡게 깔린 가상의 프라이빗 룸 안으로 들어섰다. ‘미스터 포드(아커만은 늘 그렇게 부른다)’가 자주 방문한 스튜디오 54와 앤트워프 시절의 젊은 아커만이 즐겨 찾던 쾌락적 클럽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한 공간이었다. 마티니 한 잔을 다 비우고 나니, 모델들이 자극적이고 은밀한 옷차림으로 방 안을 돌아다녔다. 1980년대 은행원이 입었을 법한 줄무늬 수트에는 길고 느슨하게 재단된 바지를 매치했고, 실크 로브는 장난스러운 색으로 포인트를 더했으며, 턱시도 셔츠는 안에 입은 탱크 톱이 드러나도록 단추를 풀어 헤쳤다.

전통적인 의미의 섹시함은 아니었다. 드러난 가슴이나 복근도 없었고, 짧은 반바지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많은 디자이너가 여전히 최음 효과가 있다고 여기는 그 아이템 말이다. 아커만은 언제나 관객의 심박수를 높이는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런웨이에 모습을 드러낸 모델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급히 옷을 걸쳐 입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한 남자 모델은 유연한 가죽 의상 위로 부드러운 트위드 재킷을 걸치고, 토트백에는 신문을 꽂아두었다. 아커만은 미스터 포드가 앞장선 기립박수에 허리 숙여 인사했다.

“지금은 숨을 고를 때가 아닙니다.” 아커만이 옥상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첫 데이트에서는 맹목적인 열정에 서로 끌리지만, 냉정해진 두 번째 만남에서는 실패로 끝나는 연인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진짜 일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아커만은 프랑스식 억양이 섞인 낮은 목소리로, 사려 깊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대화를 계속 이어가야죠. 이것이 나만의 고유한 언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내 억양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아커만은 톰 포드라는 세계에 자신을 얼마나 투영할지 가늠하는 중이다. 아커만 특유의 스타일은 클래식과 이국적인 것, 정제된 것과 야성적인 것 사이를 오가는 열정적인 춤과 같다. 그의 대담한 미학은 2024년 럭셔리 아우터웨어 브랜드 캐나다 구스가 아커만을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옥상에 있는 그는 크림색 실크 페이즐리 셔츠와 같은 무늬의 스카프, 해진 빈티지 인디고 바지에 짙은 먹색 벨벳 슬리퍼 차림이다. 호텔 리츠 파리에서 저녁을 먹을지, 베두인 캠프에서 밤을 보낼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콧수염은 단정하고, 검정 곱슬머리는 풍성하다. “어쩌면 나는 미스터 포드처럼 아주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보탰다. “그걸 동경하긴 합니다. 하지만 내게 수트를 잘 입혀놓으면, 2분 만에 완전히 망가뜨려버릴 거예요.”

하이더 아커만의 일상은 상상하는 것만큼 화려하다. 니스에 모인 배우 틸다 스윈튼과 파리다 켈파(Farida Khelfa), 모델 카이 이사야 자말과 사스키아 드 브라우(Saskia de Brauw) 모두 그의 친구이자 뮤즈다.

그의 데뷔를 둘러싼 긴장감에는 아커만이 직면한 막대한 부담도 한몫하고 있었다. 톰 포드라는 인물은 2022년 에스티 로더에 회사를 28억 달러에 매각한 뒤 영화 제작에 집중하기 위해 은퇴했음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에 거대한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다. 그의 첫 후임자였던 피터 호킹스(Peter Hawkings)는 톰 포드 디자인 스튜디오의 베테랑이었지만, 그 자리에 머문 시간은 1년에 불과했다. 공식적으로는 물러났을지 모르지만, 미스터 포드에게는 아직도 지켜야 할 살아 있는 유산이 있다. 그렇다면 아커만은 데뷔를 앞두고 긴장했을까? “첫 번째 룩이 나오기 직전의 그 침묵 속에서는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수년간 함께 일해온 모델들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리허설 때는, 맞아요, 긴장했어요. 그 두려움 역시 필요하니까요.”

아커만이 톰 포드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1990년대 갈리아노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당시 포드는 구찌를 대담하고 관능적으로 전면 개편하고 있었다. 아커만의 관심은 섹시한 벨벳 수트를 만드는 젊은 미국인보다는 그 시절 아방가르드 디자이너에게 더 쏠려 있었다. “레이 가와쿠보, 준야 와타나베, 마르탱 마르지엘라, 생 로랑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그게 내 세계였어요.” 이어서 그가 덧붙였다. “구찌는 즉각적으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곁눈질로 지켜보긴 했습니다. 어쩌면 그 섹시함을 느끼거나 이해했을지도 모르죠. 가톨릭식 성장 배경 때문인지 아주 금욕적인 앤트워프 환경 때문인지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후 20년 동안 아커만은 자신의 억제력을 내려놓고 결국 패션계 최고의 낭만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두꺼운 마니아층을 거느린 자신의 브랜드에서 풍성한 남성복과 매혹적이고 날렵한 수트를 선보였다. 덕분에 틸다 스윈튼, 티모시 샬라메 같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지닌 인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2024년 9월 전해진 아커만의 톰 포드 합류 소식은 놀라웠지만, 그는 곧바로 완벽한 조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 세상에!” 미스터 포드가 일자리를 제안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어디에 있었는지 묻자, 기억을 떠올린 아커만이 얼굴을 붉혔다. 사실 자신의 패션 하우스에서 일해달라고 요청하는 또 다른 누군가와 저녁 식사 중이었다. 2020년 이전 사업 파트너와의 분쟁 후 자신의 브랜드에서 물러난 아커만은 당시 패션계에서 가장 유망한 ‘싱글’로 꼽혔다.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테이블을 떠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매우 특별하고 섹시한 목소리가 남긴 음성을 듣게 됐죠.” 그는 톰 포드의 음성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을 회상했다. 아커만은 저녁 식사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벨벳의 환상이 머릿속에서 춤추고 있었던 것이다. “목소리가 너무 벨벳 같았습니다. 깊고 관능적이었죠.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벨벳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아커만은 영화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포드와 공유하는 많은 특성 중 하나다. 비록 아커만은 영화에 대해서는 “완전히 의견이 다르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포드는 종종 목욕 중에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묻는다. “거품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요.” 아커만이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그 밖에도 몇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옛날식 매너, 위엄 있는 태도, 남성적 허영에 대한 사랑이다. 아커만은 심지어 포드를 남성 라이프스타일의 신으로 만든 특유의 세련되고 날카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데도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톰 포드가 오래전부터 빛을 발해온 레드 카펫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아커만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해졌다. “지금 레드 카펫은 완전히 서커스 같아요. 블레이저 안에 티셔츠를 입지 않은 남자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죠. 베니스에서 티모시 샬라메에게 등을 드러낸 빨간 수트를 입혔을 때, 금기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처럼 이제 모든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에요!”

톰 포드가 2000년대와 2010년대 남성의 미적 기준이었다면, 아커만은 2025년 새로운 신사상을 정의하려는 듯 보인다. “톰 포드 하우스에서는 예전부터 ‘힘(Power)’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단어는 전혀 와닿지 않아요.” 이어서 그가 말했다. “오히려 나를 멀어지게 만들죠. 누군가가 강해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커만의 비전이 전임자와 차별화되기 시작한다. 그가 생각하는 강인함은 지배가 아닌 신중함, 과시가 아닌 신비로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드레스는 제외하더라도, 3월 쇼의 룩 대부분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아커만의 팬이자 친구인 모델 겸 아티스트 카이 이사야 자말(Kai-Isaiah Jamal)은 말한다. “하이더는 서로 다른 세계를 융합하는 아주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있어요. 성별의 경계를 미묘하고 매혹적인 방식으로 비틀죠. 남성복과 여성복에 세심하게 접근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권력이라는 것이 잘못된 곳에 놓여 있습니다. 누군가가 힘을 가졌을 때, 그걸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눈에 띄지 않아도 됩니다. 방어막을 갖출 필요가 없어요.” 아커만은 스타일이 움직임과 제스처에서 발견된다고 믿는다. 라펠의 너비가 아니라 앉는 방식이나 소매를 걷어 올리는 방식에서 말이다. “물론 톰 포드 하우스에서는 수트가 중요하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요소도 허용해야 합니다.”

저녁 8시, 아커만이 다시 일하러 가기 전, 그의 톰 포드는 어떤 향이 날지 물었다. 향수와 뷰티 사업을 전개하는 거대 브랜드 아닌가. 그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며 낭만적인 상상을 펼친다. “이른 아침, 막 밤을 보낸 남자의 향기를 맡고 싶습니다. 그는 여전히 턱시도를 반쯤 입고 캐시미어 코트를 걸친 채, 느긋하게 운동복 바지를 입고 아래층 카페로 내려가 신문을 읽고 있죠. 늘 최근 소식을 알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담배 냄새와 땀 냄새가 남아 있고, 오래된 향수 냄새와 방 냄새까지 느껴집니다.”

지난해 10월 초, 아커만은 모두가 간절히 기다린 두 번째 쇼를 위해 우리를 다시 파리의 그 작은 강당으로 불러 모았다. 마당은 광대뼈가 도드라진 셀러브리티로 가득했다. 시퀸을 흩뿌린 수트를 입은 채, 억만장자의 결혼식에서 잠시 바람을 쐬는 것처럼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부는 칠흑처럼 어두웠고, 유일한 빛은 광택이 나는 남색 바닥에 반사되었다. 모델들은 런웨이를 따라 사냥하듯 걸어 나왔다. 아커만의 톰 포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더 섹시하고 세련된 삶을 꿈꿨다면, 이번에는 순수하고 거침없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거의 모든 디테일이 감탄할 만큼 매혹적이다. 우아한 퇴폐미가 물결치듯 스며든 수트는 파자마처럼 입었고, 파자마는 수트처럼 착용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전시의 경계를 흐린다. 모델은 런웨이에 머물며 좌우로 관객을 강렬하게 응시한다. 발에는 본디지 장식이 달린 가죽 샌들이나 ‘GRA’ ‘BME’라고 수놓은 도발적인 벨벳 슬리퍼가 신겨져 있다. 모두 부드럽고 고양이같이 우아하게 움직인다. 가죽 G-스트링(톰 포드의 클래식한 장치) 브리프가 반투명 반바지 위로 삐져나온 근육질의 남자들마저도 말이다. 전날 밤의 쾌락을 땀으로 씻어내러 가는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섹시함은 여전히 노출과는 관련 없다. 아커만의 관능적인 비전 속에 탄생한 캐릭터들은 전시되어 있으면서도 완전한 통제권을 쥐고 있는 듯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다. 아커만은 백스테이지에서 ‘연약함과 강인함, 용기’를 언급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진 않죠. 그들이 이런 내면의 힘을 지니길 원했어요.”

이것은 순수하게 아커만다운 새로운 파워 드레싱의 개념이다. 동시에 톰 포드가 남긴 유혹의 유산에도 충실하다. “우리는 미스터 포드를 알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기도 합니다. 그것이 내 캐릭터에 바라는 지점입니다. 그를 이해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전혀 모르는 거죠. 그는 완전한 미스터리예요.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것이 미스터리가 아닐까요?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건 아무런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않죠. 신비로움은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그 감각은, 정말 그 너머에 있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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